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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껴 모은 5억, 좋은데 쓰자고 했잖아…여보”

김연주 기자 carol@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03-30 09:18

"우리가 같이 좋은 일 하는 거야. 당신도 알고 있지?"

27일 경기도 김포의 A병원 중환자실. 장재은(81)씨가 산소호흡기를 끼고 누워 있는 부인 최현숙(80)씨 귀에 대고 속삭였다. 최씨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장씨는 때때로 감정이 복받쳐 눈물이 흐르자 낡은 점퍼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훔쳤다.

장씨는 지난 21일 평소 다니던 인천 강화군의 홍의교회를 찾아 "우리부부 공동명의로 5억원을 장학금으로 기부하겠다"고 했다. 큰 병이 없던 부인이 기도(氣道)에 음식이 걸려 갑작스레 뇌사 상태에 빠진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25일에는 장씨와, 서울에 사는 아들(54)·딸(48)이 참석한 가운데 교회에서 장학기금 봉헌식이 열렸다. 평소 장씨 부부의 돈 씀씀이를 잘 알고 있던 마을 주민들 사이에선 '5억원 기부' 소식이 화제가 됐다.

지난 26일 학생 장학금으로 5억원을 기부한 장재은씨가 뇌사 상태에 빠져 경기 김포의 한 병원 병상에 누워 있는 아내 최현숙씨를 바라보고 있다. /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1956년 인천사범학교(현 경인교대)를 졸업하고 평교사로 시작해 1997년 교장으로 정년퇴직한 장씨와 부인은 마을에서 소문난 '구두쇠'였다. 교사 시절 월급을 받으면 100원도 허투루 쓰지 않고 꼬박꼬박 저축했다. 부인 최씨는 시부모를 모시고 아이를 기르면서도 밤낮으로 인삼 농사를 지어 돈을 보탰다. 비싼 외식, 해외여행 한번 안 하고 돈을 아낀 부부는 논·밭도 사고 큰 재산을 모았다. 그래도 최씨는 최근까지 집에서 읍내 나가는 차비 1000원이 아까워 승용차가 있는 이웃이 나갈 때를 기다렸다 얻어타고 다녔다. 구멍 난 양말은 꿰매 신고, 옷은 해질 때까지 입었다. 이웃들은 "돈을 저만큼 모았으면 좀 쓰고 살지 왜 저럴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구두쇠로 소문난 장씨지만 30년 전쯤부터 '근검절약하며 살아도 재산은 좋은 데 써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1981년 교감으로 있던 강화 송해초등학교에 TV가 없기에 당시 한 대 20만원짜리 TV 10대를 사서 기부했다. 낭비라면 질색하던 부인도 학교에 기부한다고 하니 흔쾌히 따랐다. 그 일을 계기로 장씨는 '가장 좋은 일은 장학사업'이라는 생각을 굳혔다. "그냥 건물 한 채 올리면 그걸로 끝이지만, 아이들에게 지원하면 오랫동안 장학금의 의미와 효과가 지속된다"고 믿었다.

장씨는 올 초에는 연말에 재산 중 일부인 5억원을 장학금으로 기부하기로 마음먹고 기금 운영 방식도 정해뒀다. 매년 강화 지역 5개 고등학교 학생 5명에게 각 100만원씩, 자기 모교(母校)인 송해초등학교 학생 1명에게 20만원과 도서구입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소문이 퍼질까봐 부인에게도 연말이 다 되어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쓰러져 사경을 헤매게 되자 기부 계획을 앞당긴 것이다. 자영업을 하는 아들과 딸도 아버지의 결정에 반대하지 않았다. 장씨는 "집사람이 숨이 붙어 있는 동안 우리 둘의 이름으로 기부하고 싶었다. 우리 둘이 근검절약해서 모은 돈이니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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